
Vida de Aventura
메타버스 게임감독

기아 자동차 "니로2" 런칭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메타버스 게임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됨.
세계관, 시나리오, 게임을 내가 기획했음.
그러나 프로토타입 단계가 완료 되었을때
나는 다음 프로젝트 기획에 투입 되었고,
이 프로젝트를 회사 내 다른 담당자가 하게되어
마무리를 짓지 못하게 됨.
캐주얼한 작은 미니게임들로 구성된
가벼운 게임이었는데, 무거운 게임이 되고
밸런싱이 없는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출시 됨.
내 입장에서는 실패한 프로젝트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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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술교육대학교 학생들에게
게임기획/개발을 지도함
약 6개 팀으로 재학생을 결성해서
로블록스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개발일정, 콘텐츠를 관리함
LUA 기초문법 교안을 만들고
동영상을 만들어 전파했음.
그러나 깊이 있게 가르칠 수 없었음.
회사와 학교가 계약한 범주 안에서
지도해야했고, 학생 수 가 많아
집중적인 지도가 어려웠음.
하지만 학생들 손으로 직접 만든 콘텐츠로
학교 재학생들과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었고,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다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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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초기, 나는 2021년 12월에
대표님께 "메타버스 마케팅 기업"으로의
방향을 제시해드렸고,
마케팅이 가능한 메타버스를 만드는데에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추진을 이어나아가게 됨.


에버랜드, 스마일게이트 등
여러 회사의 콘텐츠를 기획했으나,
클라이언트와의 협상, 이해시키기, 줄다리기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음.

특히, 우리 회사는 5월~6월을 기점으로
국내에는 이미 좋은 평가가 나있는
메타버스 구축 "국내 1위" 기업이 됨.
그 시점에서 우리는
"글로벌 프로젝트"가 필요했고
LG전자와 그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기획단계를 밟게 됨.





나는 거의 2~3달 간
"LG핼씨그라운드"를 기획 하는데에
모든 에너지를 다 집중함.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규모가 큰
'사회적책임' 관련 프로젝트였고
그 의도도 순수하고 좋아서
프로젝트가 나 스스로
마음에 들었기 때문임.
하지만 비용문제에 이견이 있었고
결국 프로젝트가 잠정 중단됨.
한차례 허망함을 맛보게 됨.
그리고 정신적으로 약간 지치게 됨.





곤지암 스키리조트 프로젝트의
세계관, 게임기획, 개발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상대했던 클라이언트들과 달리
곤지암의 경영진은 나를 전폭적으로
신뢰해주셨음.
곤지암 상무님께서 게임개발에 경험이
있으신 분이셔서, 게임적인 부분과
창작력에 있어서 좋은 결과를 위해
전적으로 나에게 모든걸 맡겨주셨음.
결과, 매우 아름다운 세계관이
나올 수 있었고, 비교적 짧은 시간내에
성공적으로 게임개발이 이루어졌음.
계획대로 이벤트를 열었고
성공적으로 마케팅을 할 수 있어
좋은 케이스를 만들 수 있게 됨.
내가 정말 애착을 갖을 수 있었고
지쳐있는 가운데에서도
정신을 집중해 몰입할 수 있었던
가장 이상적인 프로젝트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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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과 정신력이 30% 정도
남은 상태에서
애큐온 저축은행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됨.
이 프로젝트는 경쟁을 통해
획득한 프로젝트로
모든 기획, 발표를 전부 내가했고
금액으로만 보면 LG와 비등한
큰 금액의 프로젝트 임.
(12월 31일 기점으로, 아직 론칭되지 않아,
실제 게임화면은 아직 공개불가)
현재 12월 31일 기점으로
약 90% 정도의 개발 상태를 보이고있음
웹과 마케팅과 데이터 집계를 위한
모든 것들이 완성된 상황이고
다음달에 오픈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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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말 해서
나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완전히 지쳤음.
일단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기획자인 나에게
이 프로젝트 추진과정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았음.
프로젝트 기간이 너무 짧았고
컨펌 과정이 몹시 복잡했음
기획자와 개발진의 피로도를
공감해주지 않고 압박이 너무 심했음
최고로 노력을 다해서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겨우겨우 만들어도
그 사실을 인정받기 어려웠음
나 뿐만 아니라 모른 구성원이
극심한 피로도를 보였음
내부 구성원들조차
그런 상황이나 일정을 이해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 원활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나를 비난하게 되었고 (상황을 모르니까)
난 가운데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음. 인력수급도 원활하지 않았음.
매 주 개발보고를 진행 하면서
(주단위 개발보고 자체도 말이 안되는 일)
나는 매 주 힘들었음.

결국
CBT를 앞두고 왼쪽 무릎이
붓기시작하고 발목까지 마비되어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됨.
만성염증 + 극심한 스트레스로인한
통풍성 관절염에 걸림.
12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걷지 못하고 출근도 하지 못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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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후 지난 1년간
출근-퇴근 만을 반복했고
주말에도 출근하거나,
혹은 그냥 엎어져 자는 생활로
일관하다보니,
일 이외에는 어떤 취미생활이나
여행을 간 일도 없고,
여유를 갖지도 못했음.
운동 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음.
늘 정신적으로 지쳐서 피곤해있었고
시간이 나면 먹는것(매우 나쁜 음식)과
잠 자는것을 선택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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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늘 무기력했던건 아님.
조금의 에너지라도 남으면
늘 생산적인 뭔가를 하려고 노력했음.
책을 쓰고, 사람들을 가르치며
재능기부를 했음. 약 5달 정도 매주 주말,
야간에 온오프라인을 통해
사람들을 가르치는 시간을 가졌음


지난해에 나에게 은혜를 주셨던
전라남도 광주에 내려가서
매주 주말마다 청소년, 청년들에게
게임기획/개발을 가르치는 재능기부를 함.
우리 회사 대표님 포함
내 친구, 지인들은
"꼭 그렇게까지 해야되냐?"라며
또 나에게 미친놈이라고 했는데.
이 기회에 은혜를 갚아야한다고
생각했음. 언제 갚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인연이 닿았을때
행동해야 한다고 판단했음.




코딩을 가르치는건 어려운 일임.
하지만 나 자체가 늘 학습자이고
좋은 학습자가 아니라 나쁜 학습자라서
어떻게 하면 나같은 나쁜 학습자에게
이해가 쉽도록 잘 가르칠 수 있는지
나 스스로 잘 알고 있음.
학생들은 뭔가 결과를 만들어냈고,
다행스럽게도 운이 따라주어서
그들의 작품을 전시회에 내걸 수 있었음.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의미있는 기억으로 남길 바람.

틈이나면, 시민단체 활동도
참여했음.
하지만 LG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5월기점으로 시민단체 활동은
더 할 수 없었음.
시간이 없었기 때문임.

정부주관 토론회, 지자체 토론회 등에
시간이 있을때 참여했음.
다행히 회사에서 메타버스 관련
토론회를 보내는 경우도 있었음.
이런것들은 매우 적성에 맞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임.
뭐라도 현황을 개선 하는데에
내가 도움이 된다면 나는 그 일들을 했음.
물론 시간이 매우 없었고
아주 바빴지만. 어디서 나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난 그걸
끝끝내 해냈음.

오다가다 경로에 전시회가 있으면
밥을 포기하고 전시회에 참가해서
다른 산업계의 현황과
시장동향을 캐치하려고
정보를 얻고 사람들을 얻으려고
노력했음.
메타버스가 실험적이고
과도기인 시장이고
기대했던것 만큼
케이스가 나지 않은
시장이라
그리고 내가 제안했던
마케팅 플랫폼이 될 수 있는
메타버스가 되는 과정이
너무나 느린 이유도
이러한 나의 불안증을
악화시킨 요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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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회사는
플랫폼이 되기 위한 수순을
밟아 나아가고 있으며
기회는 언제든 열려있고
메타버스에서 누적한 업적이
국내에서는 독보적인 상태임.
나 또한 거기에
흥미와 의욕을 느끼고 있음.
부디 내년에는
구축 프로젝트 보다는
자생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
더 큰 역량을 갖추게 되길
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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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년에는
운동, 여행, 취미(창작), 사회활동
적극적으로 할 것임.
일에 몰두하는건 좋지만
정서가 무너지는 경험을
이번 해 10~11월에 경험함.
일만 하면 일 외엔
인생에 아무것도 안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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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돈으로 보상도 안되는
연차가 남는구나...
1주를 쉬었는데도
연차가 아직도 7일이나 더 남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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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023년 08월
디즈니, CJ, 리그오브레전드
메타버스 기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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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KCON 메타버스
오픈 (제페토)
아쉬운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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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프로젝트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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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 퇴사 후
건강회복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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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라즈베리파이,
파이썬, 판다스, 리눅스
코딩하여 AI 서비스 기획/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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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고 싶었던
로블록스 게임개발
(슈팅게임)
도트찍듯이 만든 계급장
걍 포토샵으로 일일히 그렸음.
하여간 클래스 만드는 작업은
토드던 뭐던 계속 중독성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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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밤"
소설 표지 제작하여
변경하고,
9일밤 시즌2
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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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툴이 적용된
SD와 알고리즘, 모델
연구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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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과는 별도로
갤러리를 안전하게 이전하여
곧곧곧 오픈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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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페이스인식 정확도
계속 개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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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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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4 퇴사 후 건강회복겸
개인 프로젝트, 다양한 활동을 하며
6개월을 자유롭게 보냄
그리고 우선순위 1은
PLAY4로 복귀였고
(좋아하는 사람이
거기있어서)
우선순위 2는
다른회사로 이직이었음
P4로 복귀는 무산됨
(신규 프로젝트 없음)
그래서 플랜B로
게임기획, 콘텐츠기획쪽을
유지하기 위해 해당분야로
이직을 타전했는데
메이저 기업에 합격되었는데
갑자기 전략기획이
더 fit에 맞는다며 그쪽으로
활동해줄것을 요청해옴.
근데
플랜C였던 교육기업에서는
콘텐츠기획만 해달라며
요청을 해옴.
난 평소 PO 역할과 AE역할까지
하면서 개발디렉터까지 겸하는게
너무나 힘들었었고.
그리고 블록체인 회사에선
순수 전략기획 팀장으로
CEO staff를 했는데
너무 시달려서 피곤해서
가장 적성에 부합하는
콘텐츠만을 하며 살고싶었음
그래서 교육회사로
이직을 하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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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반전]
일단 이직한 교육회사는
매출이 100억은 넘는회사고
해당분야 인지도와 고정된
시장을 보유한 회사임.
미리 그걸 알아보고
괜찮다 싶어서 옴김.
그리고 나는
인공지능 + 에듀테크 흐름을
일찍 읽고 있었고, 관련분야
사업아이템 다섯개를
창안해서 들고있었기에
충분히 성과낼 자신이 있었음.
해서 에듀테크쪽으로
일부러 옴겨옴.
여기까진 내 판단이
정확히 맞았음.
근데.
합격 하고나서 연봉협상도
면접에서 끝나고
가기로 결정해서 다른곳
다 취소하고 마음편하게
스키를 타고있었는데
출근 나흘 남겨두고
갑자기 다시 연락오더니
코딩을 안하고 개발에 관여
안하는 조건으로
콘텐츠만 하는 조건으로
연봉을 500 깍자고
연락이 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그냥 수락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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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반전]
인공지능 융합콘텐츠,
융합 플랫폼 기획 및
서비스 및 비즈니스 도출을
나에게 맡길거라 예상했음.
6월부터 그렇게 될거라고
예상을 했음. 면접때
대표님하고 그렇게
말을 나눴기 때문임.
근데
입사첫날 받은 미션이
"4차산업전시체험관"
기획안 작성이었고,
그건 용역 입찰경쟁 사업
제안서건 이었음.
그렇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용역제안서에 손을 대기 시작해
5월 어느새 6월
어느새 7월까지
전반기를 몽땅
제안서 쓰는 일들에
역량의 70%가까이 써버림
그리고 그렇게 결국
12월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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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게 행한 일]

4월에.
아산시교육청+아산 3개 대학이
함께하는 창의대회에
이순신 장군을 IP로
대회 아이디어를 내보라는
요청이 들어옴.
나는 대상자가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나서
곧장 로블록스 게임대회를
추천함.
그리고 당시 나는
"스마일게이트"의 요청으로
대구, 전주를 돌아다니며 취미로
아이들에게 로블록스 루아
코딩기초를 가르치고있었음.
해서,
로블록스로 텍스트코딩을
가르쳐서 게임대회를
해보자고 제안하게 됨.

무슨 운이 따랐던건지
순천향대와 아산시에서
그 제안을 좋다고 수락해버림.
아마 로블록스가 뭔지
잘 모른 상태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던것 같음.
로블록스는
미국의 게임플랫폼으로
한국에서 아이들은
이 게임을 하느라 밤을새고
거의 남는 개인시간의
대부분에서 이것을 즐기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냄.
유해콘텐츠로
대부분의 학교에서
접속차단이 되어있는
무시무시한 플랫폼임.
그리고 일선에 계신
선생님들은 이것의 존재를
모르시거나, 알아도 안좋게
보고계셨음.
그래서 선생님 대상으로
사전교육을 먼저 해야했음.

미국과 유럽, 인도에서는
로블록스 제작툴을 활용한
텍스트코딩 교육이
초등학생, 중학생에
보편화되어있음.
하지만 한국은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텍스트
코딩을 제대로 못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파이썬 문법을 대학교에
가서야배우고, 26살이 넘어
실무에 나오면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는 수준임.
국가경쟁력은 이렇게
차이가나고, 많은 학교가
게이미피케이션의 중요성을
교육에 도입하려고하지만
내가 볼때 그 진전을 위한
과정이 너무나 느리고
세계 흐름에 못따라감.
난 이런 부분들을
정리해 선생님들과,
순천향대 대학생들에게
공유하며,
로블록스가 얼마나
텍스트코딩을 공부하기
효과적인 툴인지
체험할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했음.
이 과정은 무려
두 달이 걸렸고 나는
업무 외 시간에 이걸하느라
밤을 새면서
교육 준비, 교안작성에
매우 많은 정성을 기울였음.






그렇게 훈련된 순천향대
재학생들은 멘토가 되어
나와 함께 아산시 내 아홉개
초등학교를 모두
돌아다니며 코딩교육을
학생들에게 공유함.
이 교육들은
7월에서 9월까지
무더위를 이겨내며
끝끝내 완성되었음
[이 일이 기적인 이유]
보수적인 한국에서.
복잡한 절차가 상존하는
이 한국에서.
그리고 전문성과
권위가 드높은 한국의
교육계에서.
초등학교 컴터실의
로블록스 접속차단 해제는
정말 기적적인 일이고
대한민국에서
절대로 불가능한 일임.
근데
그걸 했냈음.
여기에
박제를 하고자함.
그 엄청난 결정을 내리고
그걸 가능하게한
주역들 말임.
아산시교육지원청 한숙현 장학사
순천향대 장성진 교수님
순천향대 문지훈 교수님
순천향대 박미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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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장담할 수 있는데.
이 분들의 이 결정이
한국의 컴퓨팅능력 격차를
5년 이상 줄였다고 봄.
이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텍스트코딩에 재미와
자신감을 가졌을것임
그건 중학교, 고등학교때
가용할 수 있는 응용력,
창의를 끌어내는 도전과
탐구의 용기로 연결됨.
난 그걸 여러번 겪었고
나를 살게하는 주 에너지가
그것이기 때문에 잘 알고있음.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









아이들이 직접 코딩해서
함선과 화포를 개발하여
경기에 들고나와
해상전투를 벌이는
"코딩 게임대회"
였음.
한국 최초의
아니
세계에서 최초로
지자체, 교육기관,
마을이 교육목적으로
협력해서 만든
로블록스 게임대회임
해외에서도
이런 유례가 없음.



이제 나는 마법사로서,
창조 에너지와 함께
긍지를 불어넣고 싶어졌는데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이 대회를 경험하며
내가 누구인지,
내 나라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대회로 만들고싶었음
그래서
칠천량-명량-노량으로
이러지는 경기구조를
만들었고,
밤에 수도없이
잠을 안자며,
점심을 먹지않으며
게임 시스템을
직접 코딩해 만들고
맵을 디자인하고
아이들의 함선과
함포가 개선될 수
있도록 도왔음.
추석연휴도 지워버렸고
대회 당일 새벽 5시까지
밤을새며 마지막 순간까지
게임 시스템을 개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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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민들에게 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아산의 영웅이고
이순신 함대의 일등공신인
정걸 장군을 알리기 위해
홍보물을 만들고,
아이들이 기억하도록
각 전투에 대한 내용들,
우리 군의 우수성들을
우드락으로 만들어
전시했음.


서로의 작품에 투표하며
자연스럽게 내용을
습득하도록 장치들을
제공했음.
추석이 끝나는 주말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을
모시고 호서대학교에서
함께 모여 성과물 발표회겸
게임대회를 열게 되었음





그렇게 일정계획대로
하나 둘 잘 추진되면서
대회가 시작되었고
이대로 모든 경기가
잘 속행되는가
싶었지만...
회사 내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개발한 게임시스템,
혼자 준비한 대회.
그리고 스태프
훈련없이 급조된 대회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리고
한팀한팀 경기가 끝나고
패배한 아이들이
발생하고, 급기야 울면서
게임룸에서 나오는걸
목격하게되면서
"아. 내가 기획을
잘못했다" 라는걸
깨닫게 됨.
정말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 아쉬움, 착잡함,
난감함 같은 복잡스러운
감정들이 정신을 잃게
만드는걸 느꼈음.
내가 바랬던게
이런게 아니었는데.
다들 각자의 창작물로
서로 실험하고 즐기고
환호해주고 그런걸
원했었는데.
.
.
.
난 정말.
어쩔 줄 모르겠는
그 혼란한 감정과
연민 같은것들과
동정심같은것들과.
그렇게 정신을 잃었고.
사실상 반칙을 범한
팀에게 재경기 기회를
줘버리는 판정실수를
저질렀고.
공교롭게도
재경기와 다음경기에서
반칙을 저지른팀이
모두 이겨버려
우승을 하게되면서
판정시비가 나왔고
선생님들, 학부모들,
관계자들이 아이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게 되고
당사자인 아이들은
울고있었고.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버림.
.
.
.
결국 교육청에서는
나에게 직접
수습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난 그저
처음부터 내가 가졌던
생각만을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었음
"이 자리는
너희 모두를 위한
자리이고,
이순신 장군 덕분에
교육청과 학교와
마을이 큰 결단을 내려
만들어진, 우리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소중한 배움의 현장이고,
너희는 여기에 참여하려고
엄청난 노력으로
작품들을 만들어 가져왔고
너희 한명한명이
열심히한건
세상 어느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안다.
내가 너희를 가르쳤고
이 대회를 기획했고
이 게임도 내가 직접
만들었으니까.
서로의 성취와 작품을
칭찬해주고 축하해주는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이다.
내가 성취한것,
친구들이 성취한것에
집중해라.
누가 우승하고
누가 지고 이기고
그런것을 중요하지않다.
부디 서로가 성취한
것들에 집중하고
서로를 축하해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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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아이들의 눈을 보았는데,
내가 그들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그걸 배우고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던
그때의 연결된 정신으로
다시 이어지는걸
느꼈음.
.
.
관대하고 배려깊은
아산시 교육청덕분에
공동우승으로
하기로했고,
인기상도 주어
참가팀들이 골고루
상품을 받게 됨.
.
.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는데
.
.
내가 교육을 통해
전달하고 했던것들
마법적인 에너지,
마지막 인류로서의
마음가짐 같은것들
그것들이 이런 사건들로
비로소 완성되고
온전하게 전달되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
오히려 더 감사한
결말로서
긴 노력이 완성됨을
알게 되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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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확신을 느꼈는데.
이번에 행한 이 일은
정말 가치가 가장 높은일
이라는 것임.
이 강렬했던 감정들과
경험들을 아이들은
언젠가
시간이 오래 지나고
어떤 힘든 역경이나
극복해야할 도전 앞에서
문득 기억을 할 수도
있을 것임.
그때 지금 얻은
이 감정과 에너지를
마법적으로 뿜어내며
초인적으로 활용했으면
정말 좋겠음
나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에너지와
저력은 바로
그런 경험들에서
나왔기 때문에
난 정말
내 미래의 동료들에게
그것들을 나눠주고 싶음
그 일을 하며
내 시간의 일부를
쓸 수 있는건
가장 큰 축복임
심지어 이렇게
행운과 도움속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건
하나님과
많은 호국영령들의
이끌어주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믿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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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퇴사율이
매우 높은 회사임.
96%임.
대부분 다섯달을
못견디고있음.
(나도 그럴뻔했음)
SKT 코딩챌린지 대회도
회사 동료가 총괄을 하다가
퇴사해버리면서
나에게 인계 되었고,
장애인총연맹에서
감사한 기회를 주셔서
이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게 됨.
하지만
이해할 수 없게도
회사로부터 아무런
인력 지원이나
도움이 없었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인턴 연구원과
둘이서 행사를 준비하게 됨.
설상가상으로
준비시간은 한달남짓
되는 행사였고, 행사의 규모는
최소 세달은 준비해야하는
규모였음.
준비가 잘 될 수가
없었음.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행사 당일에는
3일간 30분을 자면서
밤을 새워서 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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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주요 통신사들이
데이터를 끌어모으며
AI와 융합해 새로운
데이터기반 서비스를
만들려는 흐름을
캐치하고있었음.
SKT도 에이닷을
만들면서 그런
데이터가 필요하고,
한국에는
장애인전용 데이터가
충분히 모아지지 않아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역시 바닥인
상황인걸 잘 알고있었음.
해서
이쪽으로 디렉팅을 했고,
나는 이 행사를 장애인들이
스스로 데이터를 생산하고
대기업이 그 데이터를 모아
서비스를 개선하고
창출하는 의미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게
하고싶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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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손부족에 시달리며,
그런 어떤 가치있는
위대한 목표에 집중못하고
잡무에 시달리면서
시간의 흐름에따라
모든게 소진되는걸 겪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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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1일차에
지속되는 무관심과
비협조에
극심한 스트레스,
분노를 겪으며
사직서를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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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는
반려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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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는
3일 밤을 새고
전의를 상실하고
모든 인간이 싫어진
나의 불참으로 인해
마지막 OX퀴즈에서
무너졌음
그 일로 여러사람이
부담을 지고
책임을 져야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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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정신적으로 무너진
내 잘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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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020년 이후로
뜨겁게 살지
않기로 맹세했음
따듯하게 사는걸
추구하고있음
그런데
여전히 격정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그것들을 여전히
내 모든 시간과
삶을 휘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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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를 낮추려고
노력할수록
더더욱 강하게
휘몰아치는
감정과 사건들로
점점 더 많은
영감을 얻게되고
점점 더 많은
호기심과 의지와
욕구와 대비되는
현재의 무력으로부터
나의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자각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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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ㅓ 지금
거기서 뭐하니?
라고 물을 수 있었던
2024년 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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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말 살면서
나란 인간은 도대체
뭘 해야만하는지
그것에 대한 답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있는
느낌임
잠깐 집 나갔던
명철한 의식과 감각들을
원활히 되찾고있음
(혼란스러움 속에서
의식을 되찾는 과정을
겪게 되다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조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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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정말 업무적으로,
개인 업적적으로
성취한거 진짜 너무 없는
최악의 가뭄인
2024년이었지만.
이 회사에게 감사함
그간
내가 믿었던 사람들이
막장을 떠는 모습도 봤고,
이익따라 영혼없이 움직이는
짐승같은 모습들도 봤고,
은혜를 줘도 감사한걸
못느끼는 종자들도
두루 경험하게 됨.
정직, 신뢰, 충성이
기반되는 군인의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마치 군대를 안갔다와서
남자들끼리의 의리를
못배운 되먹지못한
간사하고 가볍고, 조잡한
좁새들만 모여서 온갖 소문과
사건을 일으키는걸 관망하는
지리한 시간들이었음.
그 결과
나는 어떤 말을 들어도
일희일비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성격을 얻게 되었고,
또
누구에게 의지하지도
누구를 절대 믿지도 않는
중도, 중용을 얻게 되었음.
이건 나에게 앞으로
굉장히 거대한
무형적 자산이 될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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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난 항상
도덕 프레임과
인간 분류 습관으로 인해
핸디캡이 많았는데,
이제는 누구를 만나던
그냥 그 인간
생겨먹을대로 인정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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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늘 변함없는
진실된 나의 친구
이대원에게 감사하며
그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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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가올 남은 삶의
중요한 시간들을
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겠음.
그 각오와 마음이야말로
모든것을 이겨내게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될것임.
몇 단계 더 나아간
더욱 강인한
내면을 얻게
되었음을 느끼며
함께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함.
2024 / 12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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